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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방의 교회도서관(코람데오)
동일교회와 순교적 목자 성경환 본문
동일교회와 순교적 목자 성경환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나는 이 날까지 아직 성경환 목사같이 언행이 일치되고 꾸밈없고 자기 희생과 봉사로 일관한 전도자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를 내 신앙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으로 존경하고 있다. 그리스도 사랑의 모범적 실천자요, 혀 끝으로 나보다 남을, 나보다 내 양들을 위하는 직업 목사가 아니요, 몸소 지극히 작은 것 하나부터 실행에 보이는 참목자였다.
날로 각박함이 더해 가는 오늘날, 포장술은 능하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역자들의 홍수를 느낄 때, 문득 떠나가신 그 분이 그렇게도 아쉬워진다.
그가 만 일년간 개척의 기초를 다지고 또 새 개척지로 발을 옮기시니 그의 서군된 김성만 전도사가 후계자로 제2대가 된 것이다. 그도 만3년간 노심초사 혼신의 정열을 다해 교회를 섬겼다. 그래도 교회는 발전이 없어 스스로 물러섰다.
이어 제3대 김피득 목사(강도사로 들어와 1년후 목사 안수받음)가 들어섰다. 이도 역시 만 3년간 시무했으나 교회는 위축일로로 그 명맥유지마저 어렵게 돼 버렸다.
어찌할 바를 몰라 창초의 신뢰높은 성경환 목사를 문방하고 그 동안의 사정을 소상히 알렸다. 끝까지 남은 몇몇 교우들이 뜻을 모은 바 교회 재산 일체를 인수해 전도 사업에 써 줄 것을 성목사에게 간청했다.
성목사로 하여금 수락이 되자 그제서야 몇 안되는 교우들이 손을 맞잡고 흩어져야 할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때마침 그 다음날이 주일이었다. 김피득 목사의 마지막 집례로 개척 7년의 종막이 허무하게 내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튿날 주일 이른 새벽, 성경환 목사가 우리집 대문을 두드렸다. 아직도 미명, 방으로 들어 선 성목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어저께 논의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백지화한다. 밤새, 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사람이 문을 닫을수 없다.' 그래서 오늘부터 성목사 당신이 이 제단으로 복귀하시되 사례며 생활비는 일체 교회가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차분히 정리해 보면 전날 이렇게 한 번 문을 닫은 동일교회를 성경환 목사가 두 번 째 동일교회로 오늘 다시 고달픈 개척의 문을 또 열게 된 셈이다. 그나마 두 사람이나 거듭 실패한 끔직한 일에 또 손을 대다니 정말 십자가 지는 일인것이다. 비유컨데, 그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러나 그는 교과서의 내용만 전해주는 지식 전수의 직업교사는 결코아니다. 형식화된 교육과정보다는 그가 보여준 무진한 잠재적 교육과정이 지쳐 실망하고 자포자기한 병든 가삼들에게 재기의 밝은 등불로 역사한 것이다. 묵은 마음밭을 또 일구어 기어코 바꾸어 놓은 끈기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오늘날 세상에 흔한 교사가 아니오 보기 드문 참된 스승이요, 도심 빌딩 아래 윗층에 다투어 십자가 전을 펴는 호객꾼이 아니요, 진실로 선한 목자인 것이다.
교회는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하고 모여드는 가난한 마음들이 사랑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10명을 헤아리기 들쭉날쭉 교회로 쳐졌던 이곳에 100명을 넘어서는 새 얼굴들로 변모해 갔다. 이 어찌 범상한 일이겠는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실은 기울어져 가던 교회를 지키려고 무던히 몸부림쳤다. 교단 내에 이름 있는 목사들을 애닯게 내가 찾아 다녔던 일들을 회상한다. 와서 둘러 본 자마다 교회 입지 조건을 나무라고 냉소섞인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교회는 입으로만 멋을 부리는 자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부닥친 십자가를 조건없이 묵묵히 지는 이들로 이룩되는 것임을 배우게 된 것이다. 훗날 이야기지만 너무도 아이러닉한 일이다. 성경환 목사가 정년될 무렵, 교회가 제 모습을 갖췄을 때 후임으로 불러 달라는 목사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요모조모 외형상의 교회 요건만 재고 입으로만 멋 부리던 그들을 동일교회가 맞아 들일 리 만무하였다."
자전적 회고록 "벼랑의 회개" (서영진 지음, 1991. 12. 31)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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